샌드위치는 형식이 가벼운 음식이죠. 제 아무리 고급 식재료를 쓴다고 해도 덩어리채 손에 쥐고 앙 베어무는 모습을 생각하면 '고급' 음식이라는 생각이 쉽사리 떠오르지 않습니다. 김밥에 투플러스 한우 채끝등심을 큼지막하게 넣는다고 해도 고급 레스토랑의 플레이트에 김밥이라는 형식이 오르기는 쉽지 않죠. 이런 걸 태생의 한계라 해야 할 것 같기도 합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레스토랑 '오버진'을 시작할 때 점심 시간 주력 메뉴는 샌드위치였어요. 그것도 4천원, 5천원 하는 샌드위치가 아니라 죄다 만원을 넘는 샌드위치들이었죠. 가격을 잘못 책정한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원가, 인건비, 노동의 수준 , 기타 비용 등을 감안하고 마진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고 해도 만원 이하로 내리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많은 손님들로부터 인생 샌드위치라는 나름의 극찬을 받았으나 캐쥬얼 푸드라는 인식 때문인지 동시에 비싸다는 평도 많아서 결국은 메뉴에서 내리고 말았어요. 샌드위치에 비해 훨씬 원가가 덜 들어가는 파스타는 비싸도 별 말 없이 받아들였지만 온갖 고급재료를 다 사용해도 결국 샌드위치는 샌드위치, 서브웨이 같은 곳에서 가볍고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인식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나 봅니다.
메뉴에서 내리는 게 너무 아쉬워서 노동이라도 좀 줄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빵을 직접 만들지 않고 업체에서 받아 쓰는 방법도 생각했죠. 업체라고 해도 유명 베이커리였습니다. 그렇지만 저희의 성에 차지 않았어요. 분명 퀄리티 높고 맛있는 빵이었지만 소박한 재료라 해도 300도가 훌쩍 넘는 레스토랑의 뜨거운 화덕에서 갓 구워낸 우리집 빵에 비길 바는 아니었습니다. 재료의 가짓수로 보면 분명 대단한 비법이 있는 건 아니었는데 그 화덕이 요술을 부렸는지 빵이 유난히 맛있는 샌드위치였죠.
물론 빵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빵 속에 들어가는 샌드위치의 속재료도 일일이 수작업으로 직접 만든 것들이었습니다. 공산품은 절대 쓰기 않겠다는 신념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고 우리의 기준을 만족시키는 공산품이 없었을 뿐이었어요. 치즈도, 요거트도, 일종의 요거트 치즈인 라브네도, 각종 소스도 모두 직접 만들었고, 파프리카, 쥬키니, 가지 등도 오븐에 굽고 올리브 오일에 재우는 등등 온갖 정성을 다했으니 맛이 없으면 그게 이상할 일이었죠. 샌드위치를 메뉴에 내리고도 그 샌드위치를 아쉬워 하는 단골분들이 제법 계셔서 미리 예약하면 만들어드리곤 했습니다. 모르면 몰라도 오버진의 샌드위치를 사무치게 그리워하시는 분들이 아직도 조금은 있을 겁니다. ^^
속재료를 준비하는 일이야 가정에서도 쉽게 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빵을 다시 재현할 수 있을까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화덕의 힘을 너무나 크게 믿었기 때문이지요. 안 그러면 그 간단한 재료로도 그 담백하고 쫄깃한 맛이 나온다는 게 납득이 안 되었으니까요. 속재료를 헤치지 않게 너무 튀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정성들인 속재료에 미안하지 않게 충분한 퀄리티가 나오는 빵이라는 밸런스를 갖추었던 그 빵은 오직 화덕으로만 가능할 거라 쭉 생각하다가 그래도 오버진 때의 샌드위치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 테스트를 해 보기로 했습니다.
어쩌면 가정용 오븐으로도 비슷한 맛을 재현할 수 있겠다라는 결론을 감히 내려봅니다. 아쉬운 부분들을 하나씩 보강하면서 그 때의 그 맛에 가깝게 다가가고 있어요. 아마도 곧 가능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 가능해지는 시점이 다가오면 그 어느 곳에서도 맛 볼 수 없었던 고급 샌드위치 수업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눈이 번쩍 뜨일만큼 놀라운 맛도, 눈을 지긋이 감고 조용히 음미하게 되는 맛도, 아하!하고 무릎을 치게 되는 맛도 모두 모두 경험할 수 있는 그런 수업을 준비해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 봄에는 고풍스러운 피크닉 바구니와 체크무늬 피크닉 매트를 하나 장만해서 살랑거리는 마음과 함께 가벼운 소풍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런 수업이 되도록 준비해 볼테니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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