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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for thought

유럽의 향기로운 음료, 엘더플라워 코디얼elderflower cordial

영국에 있을 때 집에서 타운 센터로 질러서 가려면 아주 아주 울창한 숲을 지나서 가야했는데 날이 지면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아 좀 무섭기도 했지만 몇 백 년을 자랐을까 싶은 무성한 나무들과 이름 모를 꽃들, 간간이 보이던 야생 딸기 등을 보는 재미 때문에 그 길을 자주 걸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봄이 아름다웠죠. 우리나라만큼이나 금방 끝나고 말았지만. 

 

 

개인적으로 영국은 봄이 아름다운 곳이라 생각해요. 세상 그 어느 곳이 봄에 아름답지 않겠습니까만, 영국에서는 늦봄쯤 되면 우리나라보다 위도가 높아 해도 늦게 지고 비도 많지 않아 바짝 말려놓은 린넨같이 날씨가 보송보송 바삭바삭거렸죠. 그 곱고 아름다운 봄을 마무리 할 때쯤 되면 흐드러지게 피던 꽃이 있었어요. 엘더플라워라는 아주 작은 꽃송이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귀엽고도 청순한 느낌의 꽃들이 뿜어내는 은은한 향기는 제게 있어 아카시아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향이 비슷해서가 아니라 그 꽃들이 연상시키는 아름답고 청청한 계절의 기운이 비슷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한국에 아카시아가 있다면 유럽에는 엘더플라워가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벚꽃이 만개할 때 주는 시각적인 즐거움도 봄을 기다리게 만드는 한 요소지만 아카시아가 전하는 후각적인 설레임도 이에 못지 않다고 생각해요. 유럽에서는 그 설레임을 엘더플라워에서 찾았던 것 같아요.

 

 

엘더플라워 코디얼, 영국에 있을 때 처음 알게 된 이 음료는, 그 향기롭던 꽃의 이름이 엘더플라워라는 걸 알게 되고 슈퍼마켓에서 그 이름이 붙은 음료를 보게 되면서 처음 시도를 해봤던 것 같아요. 코디얼cordial이 정확히 무슨 뜻이었는지는 몰랐지만, 더 정확히는 이 단어가 음료에 붙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몰랐지만 cordially yours라고 편지 끝에 붙이는 말이 전하는 다정한 느낌 때문에 더 이 음료에 끌렸나봐요. 나중에 알고 보니, 과일 같은 것으로 만든 시럽 음료를 코디얼이라고 통칭해서 부르나 봐요. 

 

향긋한 맛이 너무 좋아서 한 때는 슈퍼마켓 갈 때마다 엘더베리 코디얼을 사오곤 했었죠. 그러다 어느 날, 좀 더 정확히는 초여름 어느날, 제가 하숙(?)을 하던 곳에 마작 파티가 열렸습니다. 집주인 부부는 남편은 영국인, 아내는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이었는데 중국계여서 그런지 우리가 화투를 치는 것처럼 종종 친구들을 불러 마작을 즐기곤 했어요. 어쩌다 한 번씩 왔지만 몇 번 보다 보니 얼굴도 알게 되고 해서 인사를 트고 지내곤 했는데 그 무리 중 한 사람이 제가 엘더플라워 코디얼을 입에 물고 다니는 걸 봤는지 자신의 뒷마당에 엘더플라워 나무가 많아서 시어머니(영국인)에게 코디얼 만드는 법을 배울텐데 오지 않겠냐 해서 1초도 생각하지 않고 가겠다고 했어요. 당시 한국에서는 엘더플라워를 구할 수도 없었지만 그래도 배워보고 싶은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갔던 기억이 있네요. 

 

드디어 한국에서도 엘더플라워를 구할 수 있게 된 것을 알게 된 게 작년. 그러나 너무 늦게 알아서 시점을 놓쳤고 다음해에는 아카시아 냄새가 코를 간지럽힐 때부터 엘더플라워를 찾아봐야지 하고 기억하고 있다가 올해 드디어 주문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게 어제 도착해서 바로 코디얼을 만들었습니다. 

 

집주인의 마작 친구의 시어머니에게 배울 때 적어두었던 메모는 온데간데 없었지만 방법이 별다른 게 없었고 널리고 널린 게 레시피라 만드는 게 어렵지는 않았어요. 다만 그 때 그 시어머니가 몇 번이나 강조하던 게 있었죠. 첫째, 씻지 말 것. 씻으면 꽃가루가 떨어져서 안 된다는 것이었어요. 둘째, 아침에 따고 따는 즉시 만들 것. 왜 아침에 따라고 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따고 나서 하루 지나면 '고양이 오줌 냄새'가 나니 반드시 따자마자 만들라고 신신당부하던 게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이 납니다. 당시에는 고양이 오줌 냄새가 뭘까 했지만 고양이 세 분을 반려하는 지금은 너무나 잘 아는 냄새가 됐죠. 

 

 

안타깝게도 제 뒷마당에서 딴 꽃이 아니라 배송을 받다 보니 하루 묵힐 수밖에 없었고 고양이 오줌 냄새까지는 아니지만 제가 알던 그 은은한 향긋함이 살짝 사라지긴 했더군요. 그래도 그토록 좋아하던 엘더플라워 향은 맞았어요. 현 상황에서는 이게 최선인거죠. 

 

24시간 동안 엘더플라워의 향을 뽑아내서 드디어 오늘 걸렀습니다. 1.5 리터 정도를 만들어서 제가 쓸 건 1리터 병에 담고 저만큼이나 엘더플라워 향을 좋아하는 후배가 있어 그 친구를 줄 요량으로 작은 병에도 하나 담고, 나머지는 얼음으로 얼리려고 실리콘틀에 넣었어요. 이건 그 시어머니가 알려주신 방법. 탄산수에 넣어서 살살 녹여 먹어도 되고 잉글리쉬 스파클링 와인에 넣어 먹어도 좋다고 강조를 하셨으나 잉글리쉬 스파클링 와인을 한국에서는 구할 수 없는 것으로 아는 관계로 그냥 다른 드라이 스파클링 와인에 한 번 넣어 먹어볼까도 싶어요. 

 

 

내년에도 또 만들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일단 제가 얼마나 잘 활용을 하는지 두고볼 작정인데 잘 활용한다면 내년에도 만들거예요. 그런데 확실한 것은 내년에는 아카시아 코디얼을 만들려고 해요. 영국에서 귀국한 첫 봄에 엘더플라워 코디얼이 그리워서 아카시아 코디얼을 만들었는데 그것도 정말 좋았거든요. 생각해보면 엘더플라워 코디얼이 너무 향긋하고 맛있기도 했지만 숲에서 나던 엘더플라워의 기분 좋은 향기, 그 어머님의 뒷마당 너머에 가득 피어있던 엘더플라워를 제 손으로 직접 따서 바구니에 넣던 추억, 그런 게 어쩌면 엘더플라워 코디얼 그 자체보다 더 아련하게 남아서 엘더플라워 코디얼을 실제보다 더 과장해서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런 역할은 아카시아로도 충분할 것 같은 그런 느낌도 들고요. 

 

참, 엘더플라워 코디얼은 유럽, 특히 영국에서는 가정 상비약 같은 그런 개념도 가지고 있습니다. 으슬으슬 감기 기운이 돌면 우리가 생강차를 타 마시듯 엘더플라워 코디얼을 마신다고는 해요.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을 주변에서는 본 적은 없습니다만 그렇다고는 하네요.  

 

오버진에 오시는 분들에겐 이 코디얼을 한 번 대접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