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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for thought

스톡, 브로스, 퐁, 쥬...서양식 육수와 관련된 헷갈리는 단어들

지난 번 브라운 치킨 스톡에 대한 글을 쓰면서 내내 찜찜한 게 한 가지 있었어요. 우리말로 하자면 '육수'라고 간단하게 말할 수 있지만 서양식 레시피나 요리책을 보면 이 육수를 일컫는 단어가 여러 가지로 나오거든요. 그저 하나로 퉁쳐서 육수라고 말하기엔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고, 그리고 서양 레시피를 볼 때 혹은 고급 레스토랑의 메뉴판을 좀 더 쉽게 이해하려면 육수와 관련된 양식 조리법의 몇 가지 명칭들을 상식적으로 알아둘 필요가 있을 것 같아 한 번 정리해봅니다. 깊이는 1차적인 정도입니다. 여기서 더 깊이 들어갈 수도 있지만 이 정도만 알아두셔도 요리책을 보는 데, 혹은 어렵고 복잡해 보이는 메뉴판을 이해하는 데 충분합니다. 

 

 

스톡 Stock 

스톡은 동물의 뼈, 향신채소(미르푸아), 아로마틱 재료 ,즉 허브 등을 넣고 끓인 국물로 아주 오랜 5~6시간 혹은 이보다 더 오래 푹 끓인 국물을 이야기 합니다. 뼈에서 나온 콜라겐 등으로 인해 이 스톡은 식히면 젤라틴화가 됩니다. 수프, 스튜, 소스 등을 만들 때 기본 국물이 되는 이 스톡은 단독으로, 즉 음식의 개념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이 다른 음식의 기초 재료로 주로 사용됩니다. 동물의 뼈를 물에 한 번 끓여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하얗게 끓인 것을 화이트 스톡White stock, 끓이는 것이 아니라 오븐에 한 번 구워서 국물에 색을 내는 데 도움을 주는 다른 재료와 함께 끓인 것을 브라운 스톡Brown stock이라고 하며 브라운 스톡이 이 '로스팅' 과정 때문에 풍미가 더 깊고 진한 편입니다. 스톡이라 이름을 붙여도 상업 주방이 아닌 다음에야 5 ~6시간씩 끓이기는 쉽지 않아요. 보통은 2시간 이내로 끝내곤 하는데 이 때문에 조리법 상에서 브로스broth와 헷갈리기도 합니다. 

 

브로스 Broth 

그렇다면 브로스는 스톡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가장 큰 차이는 브로스에는 고기meat가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끓이는 시간도 스톡보다 짧아 보통 2시간 이내로 끓이고 뼈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에는 젤라틴화가 되는 경우가 별로 없이 맑게 끓여집니다. 뼈를 넣는 경우에도 끓이는 시간이 스톡보다 짧아 젤라틴화가 심하게 진행되지는 않습니다. 브로스 역시 다른 요리의 기본 재료로 사용되지만 이 자체로 먹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브로스의 경우 간을 해서 맑게 먹는 수프가 되기도 합니다. 스톡과 브로스는 이런 기본적인 차이가 있다고는 하나 서로 대체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어디에는 스톡을 쓰고 어디에는 브로스를 써야 하느냐 물으신다면 고도의 엄격함을 따지는 파인다이닝 상업 주방이 아닌 다음에야 서로 교차 사용해도 상관이 없으나 국물이 주 요소가 되는(맑은 수프 종류) 음식이라면 고기가 들어가 풍미가 좀 더 좋은 브로스를 사용하시는 것이 좋아요. 

 

 

퐁Fond 

'퐁'이라고 썼지만 발음은 좀 희한해요. 뭔가 바람이 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요. 불어사전을 열어서 발음을 한 번 들어보시기를 권합니다. 불어에서 퐁은 바닥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요리에서 보통 고기나 채소를 팬에 구웠을 때 팬 바닥에 눌러 붙은 것을 퐁이라고 하죠. 그러면 이건 육수를 일컫는 단어도 아닌데 왜 언급하느냐 하실 수도 있는데, 고전적인 의미로 보면 이 fond은 영어의 스톡과 비슷한 의미를 지닙니다. 영어로 하자면 foundation과 같은 의미로 이해하시면 더 쉬울까요? 육수를 의미할 때는 단독으로 쓰이기 보다는 보통 퐁 블랑 fond blanc(화이트 스톡), 퐁 브룅fond brun(브라운 스톡)과 같이 붙여서 많이 얘기합니다. 이럴 때는 팬 바닥에 붙은 어쩌고 저쩌고를 생각하시기보다는 육수라 보시면 됩니다. 단독으로 쓰일 때는 대개 팬 바닥에 붙은 걸 이야기 하고요, 이 팬바닥에 붙은 고소한 것을 소스 등에 활용을 하기 위해 여기에 액상 재료를 넣어 디글레이징deglazing 하는데 이때 스톡이나 브로스 같은 육수도 자주 사용됩니다. 

 

 

쥬Jus 

쥬스라고 읽으면 안 되는 이 단어 역시 프랑스어에서 왔습니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육즙이라 할 수 있어요. 보통은 로스팅한 고기에서 흘러내린 육즙을 쥬라고 하죠. 로스트 비프를 만들면서 생긴 육즙을 beef au jus(영어와 불어가 섞여있는 이런 식의 표현은 바람직하진 않아서 불어로 하면 bœuf au jus가 더 알맞기는 합니다만 많이 사용되는 표현이라 그냥 적습니다)라고 합니다. 지나치게 무거운 소스를 지양하는 현대 주방에서는 주로 이 쥬를 활용하여 소스를 많이 만듭니다. 그래서 데미글라스 소스를 배울 때 했던 선생님의 말씀이 잊혀지지가 않아요. 데미글라스는 요즘 주방에서는 거의 만들지 않으므로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데미글라스 소스를 만드는 날이 될 수 있으니 기념하라는 말이었죠. 그 말 그대로 그 날이 제게도 처음이자 현재까지는 마지막입니다. 정통 방식의 번거로운 과정을 거친 진하디 진한 진짜 데미그라스 소스는 스테이크와 같은 고기 요리에 곁들이는 소스로는 거의 쓰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벼우면서도 풍부한 육향은 그대로 가지고 있는 쥬를 활용한 소스를 많이 만드는데 쥬라고 하면 보통 육즙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쥬를 이용해 다른 재료를 첨가해 만든 소스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하지 않게 만드는 편이고 묽게 만듭니다. 전분을 넣어 걸쭉하게 하지 않아요. 흐르는 질감을 추구하죠. 물론 쥬 리예Jus lié라고 해서 녹말을 넣어 걸쭉하게 만드는 쥬도 있습니다만 얘기가 너무 복잡해지므로 이 정도로 하겠습니다.

제가 수업시간에 만들게 되는 대부분의 소스도 사실 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풍미는 깊으면서도 빠르게 만들 수 있고 가벼운 질감 때문에 주재료의 풍미를 해치지도 않거든요. 

 

헷갈리던 서양의 육수 관련 용어들이 정리가 좀 되셨나요? 이 정도만 알아두셔도 원서로 된 요리책을 보거나 영어 메뉴판을 보는 데 어려움이 없으실 거예요. 

 

오는 <식탁에서 떠나는 세계여행> 1. 영국편에서는 브라운 스톡, 쥬 등을 활용한 요리가 나올 거예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세요.

 

http://aubergine.kr/21